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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외고 교육과정의 딜레마

by start-with-y 2024.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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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는 전국에 28개가 있어요. 후기 특목고로서 국제고, 자사고와 함께 12월 초에 원서접수를 합니다. 평준화 지역에서는 외고를 1지망으로 지원하고, 2지망부터 거주하는 평준화 지역내 일반고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외고는 특목고로서 교육과정이 좀 다릅니다. 외국어교과를 많이 배워야하거든요.

고등학생들은 3년간 192학점을 이수하게 되는데요. 2025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는 이 192학점중 68학점이상을 전공외국어를 포함한 외국어 국제계열 교과로 이수해야합니다. 지금 고1, 고2는 72학점을 외국어만으로 이수하고 있는데요. 2022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이수학점이 4학점 줄고, 외국어 국제계열로 교과목의 폭이 조금 넓어졌습니다.

아래는 외국어 국제계열 고등학교 이수 기준입니다.

교과 174학점에서 68학점은 약 39%에 해당합니다. 4학점으로 치면 17과목을 이수해야하는데요. 이 68학점의 60%인 41학점은 반드시 전공 외국어 과목으로 이수해야합니다. 역시 4학점으로 치면 11과목을 이수해야한다는 것입니다.

 

80년대의 특목고 설립목적에 따른 교과 이수기준이 40년이 지난 지금과는 맞지 않는다.

저도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외고를 볼 때마다 시대착오적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외고가 출범한 80년대야 외국어 교육이 중요하고, 외국어 인재 양성이 국가적 사업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인터넷도 컴퓨터도 휴대폰도 해외여행도 없던 시절, 국가간의 교류에 외국어 실력이 큰 가치와 경쟁력을 나타내는 시대였으니까요. 당연히 우수한 인재들은 외고에서 양성되어 정치, 외교, 경제분야로 진출하여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주역으로 성장하고 활약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구글렌즈, gpt4o, deepl 등 수많은 외국어 통번역 앱이 언어의 장벽을 없애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AI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초입입니다. 이제 외국어에 대한 장벽은 사라졌습니다. 스마트 폰만 있으면 전 세계 언어를 통, 번역 가능한 시대이니까요. 심지어 텍스트를 실시간 음성으로도 번역해줍니다. gpt4o와는 여러나라 언어로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일반 학교에서도 외국어 교육의 형태와 방법, 목표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글자연습과 단어암기위주 보다는 회화와 사회문화 비교 이해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고는 교육과정의 제한이 있기때문에 3년 내내 싫든 좋든 외국어에 파묻혀야합니다. 당연히 외국어교과를 많이 배워야하는 만큼, 다른 과목을 줄이거나 제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학, 정보, 수학 등의 과목이 그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외고를 전형적인 문과 교육과정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교육과정 전문가로서 실제 외고의 교육과정을 보면 답답합니다. 솔직히 저도 배우고 싶지않을 정도로 외국어과목이 많기때문이죠. 뭐든지 과식하면 탈이 납니다. 수능도 공부해야하고 다양한 사회, 과학, 수학 소양도 길러야하지만 외국어 수업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외고 학생들이 진학에 불리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선발된 학생들이기 때문에 대학진학결과 역시 우수합니다. 대원외고, 대일외고 등은 서울대를 비롯해 SKY 진학율이 높기로 유명하니까요.

외국어 국제과목을 68학점이상 편성하려면 국영수는 3학점, 과학은 심지어 2학점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의 학기제 교육과정 취지에는 외고의 교육과정이 분명 맞지는 않습니다. 68학점을 특정과목으로 편성해야하기때문에 타 교과들의 편성에 심각한 제한과 불이익이 주어지니까요. 지금도 외고의 교육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거나 일찌감치 정시로 눈을 돌린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여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남학생의 경우가 내신 등급 확보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도중에 과학, 정보 등 자연계열로의 진로변경도 쉽지 않습니다. 과목이수 현황에서 불리하니까요. 25년 고1부터는 통합과학이 수능과목입니다. 아무리 범위가 적더라도 수능과목인 이상 상당한 추론을 요구하는 높은 난이도로 출제될 가능성이 큽니다. 문과위주의 교육과정 상 통합과학 수능 대비는 어떨까 의문입니다. 2023년 기준 외고, 국제고의 학업 중단률은 1.9%(전체학생수 19,142명중 366명)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문과위주 교육과정이 대입에 불리하다고 판단해 자퇴한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외고가 쉽게 교육과정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교육법령으로도 규정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어 과목 이수현황 자체가 대입에서 하나의 어드밴티지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대입 블라인드 서류평가제도는 출신 고교를 드러내는 자료는 모두 블라인드 처리해서 대입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교육과정을 보면 외고는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전공 외국어과목이 41학점이상 되니까요. 일반고 학생과 비슷한 내신이라면 외고출신이라는 어드밴티지가 알게 모르게 입학사정관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올해도 외고 입시의 경쟁율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외고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꼭 지원 전 가고자 하는 외고의 교육과정을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또 외고의 특별한, 어쩌면 답답한, 시대착오적인 교육과정을 견디며 자신의 목표와 방향을 잃지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수능에도 나오지 않고, 수시 교과에도 큰 영향을 주지않는 수많은 전공 외국어의 내신등급을 따기위해 경쟁아닌 경쟁을 해야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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