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고등학교 수행평가를 폐지해야한다는 청원이 등장했습니다. 수행평가로 아이들이 잠못이룬다며 과도한 수행평가때문에 학생들이 자퇴까지 불사한다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정말 수행평가가 그렇게 문제가 있는걸까요?
수행평가가 힘들다고 하는 이유
수행평가는 수업시간에 학생의 수행과정을 관찰하여 성장과 발전 가능성을 기록하는 좋은 평가제도입니다. 교사에게 평가 주도권이 있어 교사 교육과정의 바람직한 예로 자리잡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기당 40%이상의 수행평가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 대입으로 불리는 2028년 대입에서는 학생부에 학생의 교과별 수행평가비중과 수행평가명이 대학에 제공됩니다. 그말은 앞으로 학생부 교과세특의 내실을 중점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올해 고1부터는 수행평가명도 예전과 다르게 평가의 기능과 목적 등이 드러나도록 달라졌습니다.
과제형 수행평가
수행평가 자체는 수업시간에 학생의 활동을 관찰하고 피드백하며 성장을 지켜볼 수 있어 바람직한 평가방법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수행평가로 밤을 지새우고, 학부모나 사교육 찬스까지 쓴다는 말이 나온 이유는 과도한 양의 과제형 수행평가 때문입니다. 이른바 학생의 평가목적보다는 교과세특을 위해 형식적으로 실시하는 수행평가를 말합니다. 영어 에세이 쓰기, 창업 보고서 작성하기, 단편소설 발표하기 등 수업시간에 시간을 주고 작성하고 제출하게 해야하나 일부 학교에서는 과제형으로 이메일 또는 구글 클래스룸으로 제출받는 경우가 아직도 있습니다. 당연히 집에 가서 생성형 AI를 활용하거나 부모찬스, 학원찬스를 쓰면 퀄리티가 높아지고 만점을 받을 수 있는거죠. 실제 이런 유형의 수행평가는 학생 대부분 거의 만점을 받습니다. 제출하면 만점을 받는데 안하면 손해인 셈이죠. 결국 교과 세특을 쓰기위한 활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과제형 수행평가는 금지되어야합니다. 교실에서 크롬북을 통해, 책을 읽고 요약하며 정해진 시간내에 제출 또는 발표해야하는 것이죠.
수행평가의 시기
과제형 수행평가와 함께 수행평가의 시기가 학기말에 몰린다는 점도 학생들에게는 부담입니다. 한 학기는 약 4달입니다. 1학기라면 3, 4, 5, 6월에 걸쳐 수행평가를 골고루 시행하면 되지만, 대부분의 교과는 어느 정도 진도를 나가고 나서 수행평가를 실시합니다. 공교롭게도 1, 2차 지필고사 기간을 앞두고 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지필은 지필대로 준비해야하는 입장에서 과제형 수행평가를 안 할 수도 없는 학생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입니다. 그럼 수행평가를 학기초부터 나눠서 여유있게 할 수 없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수행평가를 위해 수업을 재구성해야합니다. 그 준비는 전년도에 미리 평가계획으로 구성해야하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행평가를 매년 비슷한 유형으로 실시합니다. 또 수업진도에 맞춰 단답형, 암기형, 서술형 평가가 주를 이루다보니 어느 정도 진도가 뒷받침 되는 학기말에 몰리는 것입니다. 수업은 평가계획이 먼저 나오고 그에 맞게 재구성해야합니다. 수업을 시작하고 평가를 생각하는게 아니죠. 그래서 평가에 대해 매년 고민이 필요합니다. 평가기준과 목적, 성취수준과 배점 등이 매년 바뀔 수밖에 없죠.
문제는 지필고사다

마치 수행평가가 학생의 학습부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진짜 문제는 수행평가가 아닙니다. 한 학기 2회씩 실시하는 일제식 지필고사가 진짜 문제입니다.
올해 고1을 기준으로 한 학기는 16주입니다. 4학점 수업이라면 64시간의 수업시간에 해당합니다. 지필고사는 보통 1주일 실시되므로 2회 본다고 하면 2주가 통째로 수업시간에서 빠져나갑니다. 실제 수업시간은 56시간으로 줄어들죠. 시험일 코앞까지 진도를 나가지는 못하니까 보통 시험 1주일전에 진도를 끝마칩니다. 그렇다면 또 2주가 제외되어 실제수업시간은 약 48시간정도 됩니다. 이렇게 일제식 지필고사를 운영하려면 교과수업을 희생해야할 정도로 비효율적입니다. 수업시간이 적어지니 수행평가 실시도 빠듯하고, 진도또한 빠듯하게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수업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니 과제형 수행평가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모든 교사들은 학생들의 성적을 2회의 지필고사로 변별합니다. 형식적이고 느슨한 평가기준의 수행평가와 달리 지필고사는 학생변별에 필요한 소수점 배점이 가능합니다. 문항에 따라 2.9, 3.3, 3.5점 등 다양한 소수점 배점으로 동점자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학업성적관리지침규정에서 지필고서의 배점을 수행평가처럼 정수로 처리하라고 한다면 교사들은 지필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변별이 안될테니까요. 지필고사가 변별에 유리한 또 하나의 이유는 50분이라는 시간과 텍스트의 압박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마치 수능처럼말이죠. 국어나 영어 처럼 지문을 활용하는 교과의 지필고사문항지는 12페이지가 넘습니다. 2페이지 전체가 지문으로 빼곡한 경우도 있습니다. 변별이 안될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필고사의 평균은 50점이 안되는 교과가 수두룩합니다. 다행히 형식적인 수행평가로 어느정도 점수를 주기때문에 학기말 환산점수에서 간신히 50~60점이 나오곤 합니다. 지필고사의 비중이 크고 변별에 큰 영향을 끼치다 보니, 지필고사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필고사를 출제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틀릴만한 문제를 출제합니다. 학생들이 틀려줘야 안심이 됩니다. 쉽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동점자라도 생기거나해서 1등급을 가르지못할까봐 전전긍긍하게됩니다. 그러다보니 너무 어렵게 내려다 문항오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앞으로 점점 고등학교 내신에 관한 민원이 늘어날 겁니다. 학생들은 지필고사가 끝나자마자 학원선생님과 문제의 오류를 찾아내니까요. 교사들은 지필고사를 내면서 2~3주 스트레스를 받고, 지필고사후에 학생, 학부모 문제오류제기로 또 한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전국 모든 일반고의 풍경입니다.
일제식 지필고사는 고교학점제와 맞지않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모두가 함께 보는 일제식 지필고사는 학생과목선택이 다양한 고교학점제와는 잘 맞지 않습니다. 개인별로 시간표가 다를 정도로 선택과목의 조합이 다양한 학생들을 한 반에 앉혀놓고 수많은 과목의 지필고사를 실시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선 지필고사일정이 길어지고 시험과목수도 크게 증가합니다. 2022개정교육과정은 융합이 핵심입니다. 이제 물리학과 윤리와사상, 동아시아 역사기행과 지구과학을 수강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과거처럼 문, 이과로 나눠서 쉽게 보던 지필고사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올해 고1부터는 2학년 1학기가 되면 약 20개의 과목이 지필고사를 실시할 겁니다. 20과목이면 하루에 4과목이 시험을 봐도 5일입니다. 5등급으로 내신이 완화되었다고 해도, 교사들의 지필고사 난이도와 횟수는 줄지않을 것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이죠. 한번도 지필고사를 보지않고 수행평가로 변별한 경험이 없는데다, 지필고사가 한줄로 줄세기우기 쉽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기때문입니다. 이렇게 지필고사를 모두가 고집하게되면 고등학교 학사일정도 복잡해집니다. 학기말 성적처리에 시간이 걸리고, 방학이 지나 미이수 학생들에대한 최소성취수준보장지도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앞으로 고등학교의 방학이 줄거나 없어질 것이라고 제가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평가는 하루아침에 달라지지않아

물론 고교학점제가 내신의 절대평가를 도입했다면 많은 교사들이 수행평가로만 평가했을거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전 절대 그럴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는 하루아침에 짠~하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매년 평가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 고민하고 조금씩 바꿔나가야합니다. 그리고 고교학점제와 2028 대입이 지향하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 수행평가의 내실에 힘쓰고 변별력을 갖추도록 고민해야합니다. 하지만 지필고사라는 달콤한 줄세우기 시험에 익숙해진 교사들은 쉽게 지필고사를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절대평가가 되면 성적부풀리기를 막는다는 취지로 지필고사를 실시할 겁니다. 20년을 교직에 있으면서 저도 아무생각없던 시절에는 지필고사를 2번이나 보기도 했습니다. 형식적인 수행평가를 실시하다보니 지필고사에서는 의외로 수업태도가 안좋더라도 학원이나 기본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수행평가의 난이도와 변별을 놓이고, 지필고사의 힘을 빼기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는 9등급의 일반선택과목에서도 지필없이 수행평가 4개영역으로만 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너무 좋아합니다. 지필이 없기때문이죠. 정수배점인 수행만으로도 읽고 쓰기, 논술, 말하기, 작문, 발표 등 다양한 평가를 하고 변별도 가능합니다. 수업을 수행평가 일정에 맞게 재구성했기때문에 3, 4, 5, 6월에 1회씩 총 4회 수행평가를 하고나면 학기말이 여유롭습니다. 독서활동 지도와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미이수 지도나 학생들의 교과세특을 쓰는 시간도 확보가 됩니다. 교사들에게 평가권을 돌려주라고 주장합니다. 수행평가가 교사 주도의 평가권한입니다.

수행평가를 통해서도 논술, 약술형 서술, 보고서, 발표, 인터뷰, 구술 등 다양한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 관건은 루브릭(평가기준)이다.
저는 남은 교직동안 지필고사를 볼 생각이 없습니다. 지필고사는 소수점 배점을 통한 줄세우기가 목적일뿐 교육적 가치는 없습니다. 찍어도 만점이 나오거나 0점이 나올 수 있기때문입니다. 빠듯한 시간과 엄청난 텍스트 압박은 학대와 같습니다. 자전거 타기를 평가해야하지만 눈감고 두손 놓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이 현재의 지필고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평가를 매년 수준 높고, 변별력 있게, 학생의 성장과 강점이 드러나도록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학기초부터 프로젝트 탐구형태로 한 학기를 관찰하고 평가할 생각입니다. 제 수업은 학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수업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수행평가야 말로 교사 주도의 학생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바람직한 평가입니다. 아직도 동료 교사들에게 수행평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지필고사를 줄이라고 충고하면, 손사래를 칩니다. 난 그럴 용기가 없다고 말이죠......
용기도 근육과 같습니다. 자꾸 단련해야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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