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코하마항구를 통해 들어온 영국식 카레를 인스턴트 카레로 재창조한 일본
어렸을 적, 반찬 준비하기 힘든 어머니는 가끔 카레를 만들어 주시며 별미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자극적인 향신료에 고기 덩어리와 감자, 당근, 때로는 사과를 씹는 맛에 카레를 좋아하곤 했지만 이틀 내내 남은 카레를 먹어 치우느라 곤욕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런 카레가 일본에서는 엄연한 외식요리의 하나로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한국인이 많습니다. 심지어 매운 정도, 밥의 양까지 주문할 수 있다는 것도. 일본 드라마에 보면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카레입니다. 원래 인도 정통카레는 국물이 많고 손쉽게 끓여먹기 힘든 음식이었는데 이걸 레토르트 파우치 형식으로 초간편 요리로 재탄생 시킨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모방도 특별한 재능
일본인은 음식을 단순히 맛보고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식재료를 존경하는 모습이 독특합니다. 즉, 음식에 전통을 부여하고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켜가는 진지함이 엿보이곤 합니다.
일본인은 남의 것을 잘 베낀다. 모방의 천재라고 이야기하며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즐겨먹는 돈까스, 라면, 텐푸라 등의 일본음식을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수용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음식들을 서양으로부터 우리 입맛에 맞게 재탄생시킬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무조건적인 수용에 더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또 일본음식하면 떠오르는게 색깔과 모양, 배치 한마디로 미관입니다. 사진찍지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그 모습이야말로 예술 작품에 비유할 만합니다. 그만큼 음식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담아내는데에도 정성과 혼을 쏟고 있다는 방증인데요. 잠시 우리 주변의 식당을 떠올려봅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비싼 돈 내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불쾌함을 감추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무표정한 종업원의 서비스, 가짓 수만 늘린 반찬들, 배를 채우기 위해 앉아 있는 공간, 아무런 감탄없이 먹기에만 열중하는 사람들......한마디로 전통을 찾아볼 수 없는 음식점들이 많습니다. 그저 한철 장사에 지나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요.
위화감 없는 일본음식
어려서 경양식이라는 이름의 식당에 자주 간적이 있다. 스프와 단무지.......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돈까스와 소스.......포크와 나이프를 잡고 나름 우아하고 멋지게 썰어먹던 기억.....알고보니 일본의 맛이자 문화였습니다. 지금 내 나이또래는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도 돈까스, 스시, 라면, 텐푸라, 우동, 카레 등의 음식은 아무런 거부감 없고 즐겨먹는 주식에 해당합니다. 어른들에게는 과거의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지금 세대들에게도 친숙한 기억을 만들어내는 음식이 바로 일본음식인 것입니다. 이쯤되면 일본이 이웃나라여서 고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은 알겠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야외라도 데리고 나가면 딱히 먹일만한 음식점이 없습니다. 한식은 대부분 고추장 양념이 기본이라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아이들을 데리고 쉽게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연스럽게 돈까스나 우동, 라멘 집을 찾을 수밖에 없죠. 일본음식인 간장베이스라 매운 맛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급식메뉴는 카라아게나 돈코츠라멘, 오코노미야키, 타코야키 등의 일본 음식입니다. 아이들부터 노년층까지 일본은 이미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셈입니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소개한 전주 비빔밥은 가위로 무작정 잘게 짤라 비벼먹는 음식이었다.
2016년 일본음식이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고한다. 제철음식을 사용하여 식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고 자연과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과연 일본음식은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눈을 감동시키는 매력이 있습니다. 제철음식을 일본인들은 최고의 요리로 여기며 그 지방의 향토음식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여기저기를 찾아 식도락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죠. 마치 자신이 고독한 미식가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비빔밥은 세계적인 음식인가?
몇년 전인가, 한일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에 인솔교사로 참여하여 일본의 중학생들을 데리고 명동 구경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화장품과 과자를 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한국문화에 거부감이 없는 일본 z세대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한국음식의 매운 맛입니다. 명동에서 꽤 유명한 비빔밥 음식점에 가서 1인분에 15000원 넘는 비빔밥을 점심으로 제공했는데, 대부분의 일본 학생들이 2~3숟갈을 뜨고 식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아이들의 테이블을 보니 비빔밥에 고추장이 담겨져 나와 아이들이 매운 고추장 때문에 밥을 비비고 나서 먹지를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비빔밥을 비비지 않습니다. 화려한 색채의 야채와 고기, 밥의 조화를 씨뻘건 고추장으로 망쳐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개밥을 만들어서 먹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기때문에 가급적 고추장을 비비지 않고 그냥 먹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비빔밥이지만 비비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일본과 그외 여러나라 사람들을 위해서는 흑백요리사의 에드워드 리가 선보인 잘라먹는 비빔밥도 꽤 신선해 보입니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요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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