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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비대칭에서 대칭으로 변화하는 한일관계

by start-with-y 202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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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의 한일 관계

조선총독부 청사-위키피디아

1910년 한국병합조약에 의해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여 1945년까지 식민통치를 했습니다. 이때의 한일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분이 명확한 비대칭 관계였습니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양국의 근현대 역사기술에서도 반영되었습니다. 일본 근대사의 해석이나 교육에서 한반도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근대사의 해석이나 교육에서 일제시대의 비중은 매우 큽니다. 일제시대를 빼고는 한국 근대사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도 가장 시험에 많이 나오는 내용이 바로 일제시대입니다.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이 되고 남한에 단독정부가 들어선 이후 1970년대 까지는 북한에 경제적 우위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경제사정은 열악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일찍이 196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쳐 1970년대에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데 반해, 한국은 1980년대에 비로소 개발도상국에 올라섰습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일본과는 여전히 비대칭적인 관계가 지속되었습니다.

비대칭에서 대칭으로의 변화

1990년대를 경계로 하여 점차 한일관계가 비대칭에서 대칭적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4가지입니다. 첫째, 국력의 균형화, 둘째, 가치관의 균질화, 셋째, 한일관계의 다층화, 다양화, 마지막으로 한일관계의 쌍방향화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

국력(파워)의 균형화

1990년대부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면서 일본과의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일본의 1인당 GDP는 한국의 7배였지만, 2018년에는 1.3배로 줄었고, 2024년에는 역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기업 임금 측면에서 대칭변화가 두드러집니다. 10인 이상 기업에 종사하는 상용근로자 월 임금 총액에서 한국은 2002년 약 180만원으로 일본의 385만원에 크게 뒤졌습니다. 하지만 20년 뒤인 2022년에는 한국이 약 400만원으로 일본의 379만원을 앞질렀습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 양국의 생활 수준은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느껴집니다. 사회규범을 설정하는 힘이나 문화, 예술, 스포츠 면에서의 힘 등에서도 한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균질화

2002 한일월드컵

1980년대까지는 일본은 선진 자본주의국가이며 민주주의 체제였지만 한국은 개발도상국이며 권의주의 군사독재 체제였습니다. 하지만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며 한국에서는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한일 양국은 선진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체제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90년대 부터 한일 양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을 대등한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지 게이조 총리의 한일파트너십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한일관계의 다층화, 다양화

세븐틴의 일본 콘서트

1980년대까지의 한일관계는 정부간 관계와 경제 관계에만 집중되었습니다. 일본대중문화 수입과 여행 자유화가 시행되기 전이라 양국의 인적교류는 적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문민정부이후로 양국은 지방자치단체간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시민사회간의 교류도 활발해졌습니다. 가장 현저하게 이루어진 것은 문화교류입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공공연하게 위성방송 안테나가 가정에 설치되어 일본의 위성방송이 국경을 넘어 한국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대중문화 유입이 단계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일본의 높은 문화산업자본 경쟁력에 우려를 나타내는 한국인들이 많았지만,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한국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였고, 한국문화의 일본 내 소비를 이끌어 냈습니다. 지금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매력적인 한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한일 관계의 쌍방향화

1980년대까지 한국은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컸으나, 일본은 한국에 관심이 적었습니다. 일본에서보면 한국은 안보상 반공의 방파제로서 중요했을뿐,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는 대등한 위치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보와 상품은 일본에서 일방적으로 한국에 유입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8년 올림픽이후로 한국에 관한 정보가 일본에 유입되면서 차츰 한국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이 생겨났습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사회가 풍요로워지고 해외여행이 활발해짐에 따라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한류문화의 침투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또한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정보와 가치의 이동이 크게 증가하여 양국간의 교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습니다.

한일 파트너십 선언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수상간에 체결된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 중요한 이유는 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대북 관계에 있어서도 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대북 관여정책을 긴밀히 협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또 온실가스 배출 등 전 지구적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양국간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한일관계를 국제 공공재로 인식하는 자세를 나타냈습니다. 다양한 영역에서의 다층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젊은 층의 교류 프로그램도 적극 도입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대중문화개방이라는 커다란 변화는 한국 사회와 문화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한일 관계

일본 도쿄 신오오쿠보 코리아타운

현재 한일 양국 정부와 사회 관계를 보면 아직도 비대칭에서 대칭으로의 변화에 충분히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과거 한국에 경제적 원조에 충실하던 일본의 관대함을 기대하면서도, 인권 규범과 역사 인식에서 선진국답지 않은 일본을 비판합니다. 일본 역시 아직도 한국을 한단계 밑으로 보는 사고와 행동양식이 남아있습니다. 역사문제라는 비대칭 관계 때 형성된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대칭인 과거 역사를 대칭관계에서 어떻게 풀어가야할 지, 서로의 생각과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소홀히 하면 안되겠습니다. 그런면에서 지금의 Z세대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한일 양국의 Z세대야말로 대칭적인 관계에서 태어나 서로의 문화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어느 세대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교류하는 세대들이기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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